오래된 책 [Doctor's Dilemma]의 내용을 강명신 교수가 저자인 철학자 고로비츠 교수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색하여 세미나비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편집자주)
강: “가치중립적 의학의 불가능성” 세 번째 시간인데요, 선생님. 의학의 가치중립성을 주장하는 분들은 과연 무슨 뜻으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말씀해주시기로 했어요.
샘: 의대생이 커리어 진로를 선택하는 데에는 가치판단이 결부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시야를 확 바꾸어서 구체적인 임상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손이 다쳐서 왔다고 해봅시다. 이 환자에게 의사가 뭘 해야 할까요?
강: 그야 물론, 손이 다친 경위를 묻고 살펴본 다음 치료할 방법을 찾아야죠!
샘: 그렇죠. 환자의 손 상태를 보고 치료할 수 있는 의학적 가능성을 찾겠죠. 그런데 이때에 의사의 태도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강: 무슨 태도 말씀인가요? 환자가 싫다 좋다, 그런 감정 말씀이신가요?
샘: 그렇습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가 인간적으로 싫다고 해봅시다. 그렇더라도 이런 감정은 사적으로만 느낄 뿐, 환자의 의학적 필요에 대한 대책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안 될 일이죠?
강: 예, 환자의 손을 치료하는 데에 골몰해야 하니까요. 치료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의학외적인 요소는 배제해야 하니까요. 그렇긴 한데.
샘: 그런데 뭔가요?
강: 사실은 의사도 사람인지라 그게 그렇게 깔끔하게 배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속으로 감추어도 내비칠 가능성이 크고요. 그런데 무슨 말씀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샘: 의학적 의사결정에 의사의 개인적이고 비의료적인 가치가 개입될 자리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의학적 가치중립성 주장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강: 예, 그 말씀은 알겠습니다. 이 이야기 전에도 했던 것 같은데요. JAMA에 의대생이 쓴 에세이에서, 알콜중독인 간경변 환자가 치료에 비협조적인 데 대해 양가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고백을 읽은 적이 있어요.
샘: 그건 속으로 느끼는 감정이어야지 치료를 좌지우지하면 안 될 겁니다.
강: 예, 선생님. 환자 편에서도 어쩌면 자기를 어떻게 볼지 예상을 하고 있을 수 있어요. 술을 끊지 못하고 있을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요. 병원에 오자마자 자기방식대로 자기방어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약간만 이상한 눈빛이나 말투에 아주 심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샘: 그런 상황이라면 의사는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기 쉽겠네요.
강: 예. 그리고 도덕철학적으로만 보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도덕적 문제로 일반화할 수도 있어요.
샘: 그렇겠죠. 내가 책에 바이얼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의 손과 소매치기범의 손을 대조했어요. 소매치기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이니 강 선생이 든 예와는 다른 종류겠군요.
강: 예, 선생님. 사회전체가 의사에게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의학적인” 필요에 “의학의 전문직업인으로서” 적절하게 대응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두 예에 똑같이 적용되겠네요.
샘: 그렇습니다! 소매치기를 도덕적 견지에서 비난할 수는 있지만, 의사로서 손은 치료해야 합니다.
강명신 교수는 연세대 치대를 졸업했으며 보건학 박사이자 한국의료윤리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연세대와 서울대를 거쳐 지금은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