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상주의의 탄생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모네에 이르러 마침내 회화의 목표는 ‘객관적’ 대상의 재현에서 ‘주관적’ 인상의 포현으로 바뀐다. 그 바탕에는 물론 색채에 대한 변화된 인식이 깔려 있다. 과거의 화가들은 사물에 고유색이 있다고 믿었지만, 모네와 그의 친구들은 사물의 고유색 따위는 없다고 보았다.
색이란 그저 반사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상의 색은 빛의 조건에 따라, 말하자면 계절에 따라, 하루의 때에 따라, 혹은 날씨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그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포착하려면 그림을 신속하게 그려야 하고, 나아가 매번 달라지는 그 모든 효과를 화폭에 담으려면 당연히 같은 제재를 여러 번 반복해 그리는 수밖에 없다.

그 첫 번째 시도인 [생라자르 역]은 모두 열두 장의 그림으로 이루어진다. 생라자르 역을 택한 것은 마네의 영향이리라. 마네의 마지막 작품 [철도]의 배경이 바로 이 역이기 때문이다. 몇 년간의 전원생활을 접고 파리로 돌아와 처음으로 그린 것이 산업혁명의 상징이었다는 데서 ‘모던 라이프’의 화가가 되겠다는 모네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驛舍) 안을 감도는 빛과 대기의 효과일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표현하려면 대상을 동일한 시점에서 상이한 시간대에 그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연작을 이루는 열두 점 중 정확히 같은 시점으로 그린 것은 두 점뿐이고, 나머지는 각각 생라자르 역의 다른 부분들을 보여준다. (그림 1)

▲ (그림 1) 생라자르 역. 클로드 모네. 1877년
▲ (그림 1) 생라자르 역. 클로드 모네. 1877년

제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른 빛의 변화를 표현하려는 본격적 시도는 [건초 더미] 연작과 더불어 시작된다. 연작이 보여주는 것은 1883년 모네가 별장과 정원을 짓고 거주해왔던 파리 근교 지베르니 마을의 풍경이다. 1890년 여름에서 이듬해 봄에 걸쳐 그는 수확한 밀 짚단이 날짜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 보이는 인상을 모두 스물다섯 점의 캔버스에 담게 된다. 반복을 통한 차이의 생산이라 할 수 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과 대기의 상이한 효과들을 하나의 캔버스 안에 모두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 깨닫고 그는 동시에 여러 장의 캔버스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 그때그때 빛의 조건에 따라 캔버스를 옮겨가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림 2)

▲ (그림 2) 건초 더미. 클로드 모네. 1890~1891년
▲ (그림 2) 건초 더미. 클로드 모네. 1890~1891년

이보다 더 급진적인 것은 [루앙 대성당] 연작이다. 이 연작에는 모두 서른 점 이상의 캔버스가 사용되었는데, 그는 전시를 위해 그 중에서 스무 점을 선별했다. 고딕 성당을 제재로 취한 것은 당시 다시 일어난 가톨릭 신앙 붐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연작에서 정작 고딕 성당의 위용을 보기란 어렵다. 마치 스냅사진처럼 저 거대한 건물의 전부가 아니라 파사드의 일부만 잘라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연작을 이루는 개개의 작품들이 [건초 더미] 연작에서와 달리 ‘하나의’ 동일한 시점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모티브를 하나로 고정시킬 때 부각되는 것은 당연히 날짜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지각’이다. (그림 3)

▲ (그림 3) 루앙 대성당. 클로드 모네. 1892~1894년
▲ (그림 3) 루앙 대성당. 클로드 모네. 1892~1894년

모네가 주제화하려 한 것은 빛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의 미묘한 차이였다. 문제는 그 차이가 원리적으로 무한하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장소, 같은 시각, 같은 날씨에 본 것이라도, 어제 본 광경과 오늘 본 광경 사이에는 아무리 미세하다 하더라도 차이가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감지하기 힘든 그 모든 섬세한 차이들을 일일이 화폭에 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모네도 스스로 자신의 기획에 원리적 한계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1926년 86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마지막 30여 년을 모네는 지베르니에 있는 별장에 머물며 그곳의 연못 위에 핀 수련을 그리며 지낸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수련과 일본식 다리를 모티브로 모두 250점이 넘는 작품을 제작한다. 모네의 이 마지막 시기는 현대미술이 시작된 이후이며, 이 시절 인상주의는 이미 과거의 언어가 된 지 오래였다.
모두가 인상주의를 떠났어도 모네만은 끝까지 자신이 창시한 예술 언어에 충실하려 했다. ‘혁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모더니즘의 시대에 수명이 다한 낡은 언어에 집착하는 것이 지나치게 보수적이거나 반동적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기에 모네가 그저 과거의 언어만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림 4)

▲ (그림 4) 일본식 다리(수련 연못). 클로드 모네. 1899년
▲ (그림 4) 일본식 다리(수련 연못). 클로드 모네. 1899년

1912년 백내장 진단을 받은 후 모네는 점점 시력을 잃어간다. 그 영향 때문인지 1920년 이후 그의 화면은 강렬한 원색의 사용으로 인상주의를 넘어 표현주의에 접근한다. 형의 붕괴 또한 급진적이어서 묘사가 거의 순수 추상에 가까워진다. 실제로 이 시기에 그려진 몇몇 작품은 1940~195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수련] 연작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파노라마 작품일 것이다. 당시만 해도 파노라마 버전은 캔버스 버전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추상표현주의의 등장으로 평가가 바뀐다. 사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네 방향으로 무한히 펼쳐지는 풍경의 콘셉트가 추상표현주의의 전면화(all over) 경향을 선취했기 때문이다. (그림 5)

▲ (그림 5) 일본식 다리. 클로드 모네. 1918~1924년
▲ (그림 5) 일본식 다리. 클로드 모네. 1918~1924년

1914년 모네는 지베르니의 별장에 오로지 이 프로젝트만을 위해 별도로 설치한 스튜디오에서 파노라마 작업을 시작한다. 그의 목표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마치 물처럼 끊이지 않고 무한히 이어지는 풍경을 창조하는 데 있었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는 오직 이 작품만을 위한 전시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는 원형의 벽에 작품이 둘러져 있어, 관객은 마치 연못 한가운데서 수련의 향연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잭슨 폴록이 그림 안으로 들어가서 작업을 했듯이, 이 작품의 관객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 감상을 하게 된다. 모네 자신은 파노라마 작업을 ‘거대한 장식’이라 불렀다. 오늘날이라면 그것을 아마도 ‘설치 예술’이라 부를 것이다. (그림 6)

▲ (그림 6)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설치된 모네의 수련
▲ (그림 6)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설치된 모네의 수련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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