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혁신을 위해 과거로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19세기 초반에 영국에는 이렇다 할 화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예술적 불모의 상황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아카데미 예술에 반기를 들고 ‘전(前)라파엘 형제단’이라는 모임을 결성한다(‘라파엘’은 ‘라파엘로’의 영어 이름). 존 에버렛 밀레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의 3인으로 시작된 모임은 얼마 후 제임스 콜린슨, 프레데릭 조지 스티븐스,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 토머스 울너가 가세하여 7인 모임으로 확대된다.

이들은 작품을 완성하면 자기 사인 옆에 따로 모임 이름의 이니셜(‘PRB’)을 적어 넣곤 했다. 오늘날 ‘라파엘전파(前派)’라 불리는 이 약관의 화가들은 ‘현대예술 최초의 위대한 해방 전사’로, 당시의 영국 사회에서 쿠르베나 밀레가 프랑스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이들이 ‘현대예술 최초의 위대한 해방 전사’라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1850년을 전후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탈(脫)아카데미 운동이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났는데, 그중에서도 이들의 활동이 가장 먼저 나타났기 때문이다. ‘라파엘전파’라는 명칭은 라파엘로가 성기(盛期) 르네상스의 아이콘이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당시 영국의 아카데미는 미켈란젤로의 선묘, 티치아노의 색채, 무엇보다 라파엘로를 모범으로 삼아 이탈리아 친퀘첸토(1500년대) 양식을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피상적인 손재주만 발달한 곳에서 예술적 성취가 나올 리 없다. 그래서 죽은 예술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라파엘 이전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라파엘 이전’이라 함은 구체적으로 콰트로첸토(1400년대)를 가리킨다. 이 시기의 미술은 풍부한 세부와 강렬한 색채, 그리고 복잡한 구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르네상스가 완성되기 이전이라 콰트로첸토의 미술에는 여전히 중세 회화의 면모가 남아 있었다.

라파엘전파가 1400년대로 되돌아가려 한 것은 ‘현대예술 최초의 위대한 해방 전사’라는 세간의 찬사를 무색하게 한다. 새로운 언어를 찾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현대적’이라기보다는 ‘반동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파엘전파는 19세기 초 빈과 로마에서 활동한 나자렛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자렛파는 종교개혁 이전의 경건한 가톨릭 신앙으로 되돌아가려는 복고적 예술운동이었다. (그림 1)

▲ (그림 1) 현명한 여인과 어리석은 여인들. 페터 폰 코르넬리우스. 1813년
▲ (그림 1) 현명한 여인과 어리석은 여인들. 페터 폰 코르넬리우스. 1813년

나자렛파와 라파엘전파 사이에는 물론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나자렛파가 고전적 이상미에 집착했다면, 라파엘전파는 그 어떤 예술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묘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종종 라파엘전파의 활동도 넒은 의미의 ‘사실주의’ 운동으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라파엘전파를 사실주의로 분류할 경우, 그때 ‘사실주의’는 앞에서 말한 사실주의의 네 가지 의미 중 첫 번째, 즉 ‘자연주의’를 의미할 것이다.

라파엘전파는 당대의 현실을 그리지 않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데에도 관심이 없었다. 예술을 통해 현실을 변혁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실주의의 본질이 자연주의를 포기하고서라도 당대의 현실을 정직하게 그려내는 데 있다면, 라파엘전파는 사실주의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기법만 자연주의적일 뿐 전통적 역사화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차 없는 자연주의에는 분명히 현대적인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밀레이의 [부모의 집에 있는 예수]를 보자. 이 작품은 왕립 아카데미 내에서 큰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묘사가 너무 사실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족을 성스러운 존재로 묘사하는 전통적 성화에서와 달리, 이 그림에서 성가족은 여느 평범한 목수 가족과 다르지 않게 비루한 존재로 나타난다.

이 작품을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가족]과 비교해보면 가차 없는 사실주의가 금방 눈에 들어올 게다. 이것이 당시 사람들의 눈에는 ‘신성모독’으로 비쳐진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쿠르베의 그림이 그랬던 것처럼, 이 그림 역시 영국에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림 2, 3)

▲ (그림 2) 부모의 집에 있는 예수. 존 에버렛 밀레이. 1849~1850년
▲ (그림 2) 부모의 집에 있는 예수. 존 에버렛 밀레이. 1849~1850년
▲ (그림 3)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가족.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60~1670년
▲ (그림 3)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가족.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60~1670년

강력한 비판자는 유명한 소설가인 찰스 디킨스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림 정면의 마리아는 “끔찍하게 못생겼”으며, 그 옆의 소년 예수는 “잠옷을 입고 울고 있는, 혐오스러운, 삐뚤어진 목의 빨강머리”일 뿐이다. 이렇게 “특징이든, 팔다리든, 혹은 태도이든, 추함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추함이 표현되어” 있기에, 디킨스는 이 작품이 그 자체로 “위대한 퇴행적 원칙의 기호이자 상징” 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 혹평을 한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평가 존 러스킨은 라파엘전파의 변호인으로 나서, 이들의 작품 세계를 열렬히 옹호한다. 이처럼 스캔들을 통해 얻은 유명세로 자신을 관철시키는 것 역시 라파엘전파가 가진 ‘모던’한 특성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디킨스는 왜 그렇게 격렬한 반감을 드러냈을까? 사실 르네상스 이래로 서구 회화는 ‘자연의 모방’을 표방해 왔다. 하지만 고전미술에서 자연의 모방은 늘 ‘이상화’의 요구와 결부되어 있었다. 화가들은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자연의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17~18세기를 거치면서 자연의 습작보다는 ‘이상화’에 더 집착하게 된다.

디킨스의 격앙된 반응에서 ‘고전미’의 붕괴를 처음 접한 이들의 당혹감을 엿볼 수 있다. 그 당혹감은 라파엘전파의 정신이 콰트로첸토로 돌아간 데서 나온 것이다. 1400년대는 고전미술의 이념이 완성되기 이전으로, 이 시기에 자연주의를 향한 화가들의 노력은 아직 확립된 규범이나 인위적 규칙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물론 콰트로첸토의 장인들이 이미 그 시절에 라파엘전파처럼 사진을 방불케 하는 고도의 자연주의에 도달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절 화가들은 이상미의 요구에 구애받지 않고 눈앞의 자연을 되도록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려 했다. 결국 라파엘전파가 돌아가려 한 것은 콰트로첸토의 화풍이라기보다는 그 정신이었던 셈이다.

라파엘전파의 자연주의는 콰트로첸토의 그것과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사진술이 가져온 새로운 지각 방식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파엘전파의 놀라운 자연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밀레이의 걸작 [오필리아]다. 작품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4막 7장의 사건이다.

거기서 오필리아는 제 아비가 연인인 햄릿에게 살해당하자 그 충격으로 넋을 잃고 들판을 헤매다 강물에 빠진다. 물에 떨어지는 순간 그녀는 “옷자락이 물 위에 활짝 퍼져” 그 부력으로 한동안 수면에 뜬 채 “마치 인어처럼 늘 부르던 찬송가를 부르”다가 “마침내 옷에 물이 스며들어 무거워지는 바람에” 결국 “시냇물 진흙바닥에 휘말려 들어가 죽고 만다.” (그림 4)

▲ (그림 4) 오필리아. 존 에버렛 밀레이. 1851~1852년
▲ (그림 4) 오필리아. 존 에버렛 밀레이. 1851~1852년

작품의 모델이 되어준 것은 로세티의 연인이자 아내인 엘리자베스 시달. 그녀는 이 작품을 위해 램프로 데운 물을 담은 욕조에 누워 포즈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인물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배경을 이루는 자연이다.

여기서 밀레이는 자연의 생태계에서 식물이 탄생하고 성장하여 소멸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묘사가 얼마나 정확한지 [식물도감]을 뒤져서 그림 속에 묘사된 풀과 꽃들의 이름을 일일이 특정할 수 있을 정도란다. 그 덕분에 작품은 종종 ‘회화적 생태계’라 불린다.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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