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미술의 붕괴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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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그 시기에 쿠르베는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에서도 저만의 화풍을 모색하고 있었다. 1848년 겨울부터 1850년 봄 사이에 그는 마침내 낭만주의 화풍을 벗어버리고 네 점의 사실주의 걸작을 그린다. [오르낭에서 저녁식사 후], [돌 때는 사람들], [오르낭의 매장], [장에서 돌아오는 플라제의 농민들]이 그것이다. <그림 1, 2, 3, 4>

▲ (그림 1) 오르낭에서 저녁식사 후. 귀스타브 쿠르베. 1848년
▲ (그림 1) 오르낭에서 저녁식사 후. 귀스타브 쿠르베. 1848년
▲ (그림 2) 돌 깨는 사람들. 귀스타브 쿠르베. 1849년
▲ (그림 2) 돌 깨는 사람들. 귀스타브 쿠르베. 1849년
▲ (그림 3) 오르낭의 매장. 귀스타브 쿠르베. 1849-1850년
▲ (그림 3) 오르낭의 매장. 귀스타브 쿠르베. 1849-1850년
▲ (그림 4) 장에서 돌아오는 플라제의 농민들. 귀스타브 쿠르베. 1850년
▲ (그림 4) 장에서 돌아오는 플라제의 농민들. 귀스타브 쿠르베. 1850년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 회화가 화가의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라면,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화가가 자신의 고향인 오르낭에서 직접 목격한 촌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당대의 현실을 전유하여 작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사실주의의 정신이다. 사실주의자로서 쿠르베가 추구한 것은 눈앞의 현실을 생생히 묘사한 ‘살아 있는 예술’이었다.

 

쿠르베는 그저 예술의 왕국에서 ‘화가’로 머물지 않고 현실의 세계에서 ‘인간’이 되려고 했고,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상상으로 그린 ‘가상’에서 벗어나 ‘현실’의 충실한 기록에 가까워진다. 이처럼 회화가 현실에 접근할수록 ‘가상’으로서의 성격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주의 회화에서 약화되는 것은 ‘가상’으로서의 성격만이 아니다.

고전적 예술 이념에 따르면, 예술의 존재 이유는 ‘아름다움’에 있다. 그렇기에 과거의 화가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이상화(idealization)’하곤 했다. 다시 말해 대상을 보이는 대로 모방하되 그것을 수정하여 ‘이상적 아름다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반면에 사실주의 화가들은 현실을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묘사하려 한다. 그래서 사실주의 회화는 첫눈에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앞에 소개한 네 점의 작품들을 보라. 아름답기보다는 외려 어딘지 우중충해 보일 게다. 사실주의자들에게 예술의 존재 이유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에 있다. 그들은 현실을 미화하는 것을 뻔뻔한 ‘허위’로 여겼다.

고전주의의 ‘이상화’ 요구를 배척했기에 쿠르베는 종종 비평가들에게서 ‘추(醜)’를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오늘날의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예술이 곧 미’로 여겨지던 시절에 ‘추’는 작품 안에 등장할 권리가 없었다. 이 고전미술의 규약을 파기한 것이 바로 보들레르와 같은 원(元) 모더니스트들이었다.

같은 시기에 철학자 카를 로젠크란츠는 [추의 미학]을 통해 미술 속에 ‘추’가 등장할 권리를 옹호한다. 이렇게 쿠르베가 사실주의자로 활동하던 시절 서구인의 미의식에는 커다란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상미(ideal beauty)’의 관념이 무너지면서 마침내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르네상스 이래 고전미술의 이념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주의 회화의 ‘현대성’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을까? 추하면 추한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이 새로운 발상에는 당연히 배경이 있다. 그 배경 중 하나가 바로 1834년에 발명된 사진술이다.

실제로 쿠르베는 그림을 그릴 때 종종 사진을 참고하곤 했다. 대표작 [화가의 작업실]을 그릴 때 오르낭에서 작업하던 그는 멀리 파리에 사는 지인 프루동의 사진을 얻어 그의 초상을 완성했다. 사실주의의 등장은 1850년을 전후하여 서구인들의 세계를 육안이 아니라 렌즈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실주의가 그저 현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주의는 현실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정교하게 묘사하는 자연주의와 구별된다. 사실주의 예술은 현실의 가시적 외면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라 그것을 변형적․설명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과 통찰을 제공하려 한다.

사실주의에서 현실의 사실적 재현은 대개 어떤 이념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다. 그 이념이란 대체로 민주주의적, 공화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다.

사실주의 회화에서 비로소 민중은 역사상 최초로 예술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과거에 민중은 회화에 등장하더라도 그저 배경으로만 존재했을 뿐이다. 사실주의 회화에서 민중이 예술적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에 일어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 민중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존재로 떠오른 것과 관련이 있다.

▲ (그림 5) 삼등열차. 오노레 도미에. 1862년
▲ (그림 5) 삼등열차. 오노레 도미에. 1862년
▲ (그림 6) 과거, 현재, 미래. 오노레 도미에. 1834년
▲ (그림 6) 과거, 현재, 미래. 오노레 도미에. 1834년

이렇게 정치적 이념의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사실주의’ 회화라 불리기 위해 반드시 묘사가 자연주의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장 정치적이었던 오노레 도미에의 작품은 자연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거의 캐리커처에 가깝다. 실제로 그는 화가보다는 외려 정치적 캐리커처 작가로 더 유명했다. <그림 5, 6>

이 경우 ‘리얼리즘’이라는 말은 사실주의가 아니라 차라리 현실주의라 번역하는 게 옳을 것이다.

발터 베냐민은 사진이 아우라적 지각을 파괴함으로써 과거에 종교적․미학적 기능을 했던 예술이 새로이 정치적 기능을 회득한다고 말한다. 이 ‘예술의 정치화’는 20세기 이전에 이미 사실주의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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