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본 지는 앞으로 수 회에 걸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인상주의편을 연재하려고 한다. 인상주의는 미학사에 있어 그 의의는 상당하다. 현대미술의 시초가 되는 인상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곧 현대미술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다. 진중권의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을 찾아가길 바란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두 번째 방식은 사실 사진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이 감광 물질을 이용해 대상의 형태를 화학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이라면, 뒤러의 것은 실과 송곳을 이용해 그것을 물리적으로 기록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미 카메라오브스쿠라(camera obscura)가 존재했다. 그리하여 이 시기의 여러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데 카메라오브스쿠라를 사용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들은 카메라오브스쿠라에 비친 영상 위에 직접 물감을 입혀 오늘날의 사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극사실적인 생생한 묘사를 얻어내곤 했다. <그림 1>

▲ (그림 1) 카메라오브스쿠라를 이용한 묘사
▲ (그림 1) 카메라오브스쿠라를 이용한 묘사

이로써 시각적 재현의 원리가 밝혀졌다. 일단 재현의 원리가 밝혀진 이상(그리드를 이용해 전사를 하든, 실과 송곳으로 윤곽을 따든, 혹은 카메라오브스쿠라의 영상 위에 덧칠을 하던) 화면 위에 묘사 대상의 윤곽을 옮겨놓는 일은 순수 기술적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회화의 원리가 전부 밝혀진 것은 아니다.

▲ (그림 2) 비트루비우스의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 1487년
▲ (그림 2) 비트루비우스의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 1487년

고전미술의 목표는 그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히 묘사하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주의는 자연주의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자연주의’가 그저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데 머물렀다면, ‘고전주의’는 그 수준을 넘어 사물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은 ‘자연의 모방’이라 불려졌다. 여기서 ‘자연’은 가시적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동시에, 특히 인간의 신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고전미술의 목표는 인간의 신체를 모방하되 그것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었다. 인간 신체에 이상적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르네상스의 작가들은 먼저 이상적인 신체의 ‘비례’를 발견하려 했다.

피타고라스 이래로 ‘미’의 본질은 수적 비례관계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알베르티나 다빈치 그리고 뒤러와 같은 르네상스의 작가들이 비례론의 연구에 몰두했던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그림 2>

 

신체를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현실에서 아름다운 모델을 발견하여 그대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현실의 모델들은 어딘가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 (그림 3) [봄] 중 ‘미의 세 여신’. 산드로 보티첼리. 1478년
▲ (그림 3) [봄] 중 ‘미의 세 여신’. 산드로 보티첼리. 1478년

그리하여 고대의 조각가 페이디아스는 헬레네상을 만드는 데 다섯 명의 모델을 사용했다.

물론 각각의 모델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취해 현실의 그 어떤 신체보다도 아름다운 여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르네상스의 화가 라파엘로 역시 “현실의 신체 중에는 완벽한 아름다움이 드물어 때로는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따라 작업한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아이디어(idea)’를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이데아’가 된다.

이로써 형태가 완성되었다. 남은 것은 채색뿐이다. 회화는 형태와 색채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회화의 본령을 이루는 것은 어느 것일까?

이 물음은 17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화가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고전미술에서는 색채보다 형태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알베르티는 [회화론](1435)에서 “소묘만 제대로 되어도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물론 색채를 강조하는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바로크 회화는 색채를 강조하나, 그때조차도 그것을 형태보다 더 중시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둘이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고 보았을 뿐이다. <그림 3>

 

‘색채에 대한 형태의 우위’라는 원칙은 고전회화에서 색채가 사용되는 방식을 의미한다. 즉, 고전회화에서는 색채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 가치를 갖지 못하고 주로 형태를 돋보이게 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색칠 책을 생각해보라. 평면에 붙어 있는 듯이 보이는 드로잉에 여러 가지 색깔을 칠하고 거기에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더하면 대상에 볼륨감이 생겨 2차원 평면에 그려진 대상임에도 마치 3차원의 입체처럼 앞으로 튀어나와 보인다.

이처럼 고전회화에서 색채는 주로 드로잉에 종속된 채로 그려진 대상을 마치 실물처럼 생생하게 보이게 할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고전회화에서 형태의 소묘가 대상의 윤곽을 따라야 하듯이, 채색 역시 대상 자체의 색채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때 화면에 그려진 가상의 존재는 마치 실물처럼 생생하게 보이게 된다.

알베르티에 따르면, 회화의 기능은 이렇게 아득한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을 우리 눈앞에서 보듯이 생생하게 다시 가져다놓는 데 있다.

‘재현’이란 말 속에는 한때 있었으나(present) 지금은 없는(absent) 것을 다시 있게 한다(re-present)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재현으로서 회화는 가상이며, 이 가상은 동시에 아름다워야 한다. 여기서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고전미술의 본질적 규정이 얻어진다.

이제까지 고전미술의 ‘형식’에 대해, 즉 고전미술에서 그림을 ‘어떻게(how)’ 그리는지 알아보았다. 이쯤에서 고전미술의 ‘내용’으로 넘어가보자. 고전미술은 ‘무엇을(what)’을 그리려 했을까?

사실 고전미술에서는 형식보다 그 내용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회화의 목적이 그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정신적 교훈을 전달하는 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전미술이 원근법적으로 구축된 공간 속에 소묘와 채색을 통해 실물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묘사를 한 것도 실은 환영 효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교훈을 더 생생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고전미술의 중요한 특성이 도출된다.

즉,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의 시각적 번역’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고전미학을 완성한 철학자 헤겔은 미를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정의한 바 있다. 즉, 미란 정신적 메시지를 물질적 매체에 담아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림으로 번역되는 텍스트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성서와 신화, 그리고 역사가 그것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는 주로 성서에 기록된 사건이나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장면, 혹은 역사적 위인들의 행적을 다룬 것이다. <그림 4> 말하자면 이 세 가지가 고전미술의 주요한 ‘제재’를 이룬다.

▲ (그림 4)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 루이 다비드. 1787년
▲ (그림 4)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 루이 다비드. 1787년

 

다음 호에 계속 ▶

 

 

목차
0.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고전미술의 붕괴
2. 유럽의 시대정신
3. 혁신을 위해 과거로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5. 인상주의의 탄생
6. 순수 인상주의자들
7. 인상주의를 벗어나다
8. 색채와 공간의 분할
9. 현대미술을 예고하다
10. 지각에서 정신으로
11.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
12. 감각을 실현하라
13. 자연미에서 인공미로
14. 모더니즘을 향하여

저작권자 © 덴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