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역사상 인상주의 역할은 상당하다. 인본주의를 모토로한 르네상스의 출현으로 미술에 있어서의 혁명이 일어났다. 이러한 사상적인 측면과 과학의 발달 곧 카메라의 발명은 더 이상 화가들이 초상화만을 그리는 직업이 아닌 화가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게 되는 시초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주의는 화가의 눈에 보이는 인상을 그린다의 인상을 그대로 인상주의라는 사조가 출현하게 된다.

이처럼 인상주의의 출현은 화가의 시각을 중요시하게 되고 이로 인해 현대미술의 시초를 닦게 된다. 그 중심에 있는 세잔느의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곧 근대미술에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계보를 알게 되는 큰 흐름이 된다. 이에 본지는 세잔느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했던 마이어 샤피로의 폴 세잔느를 인용하여 독자들의 미술세계를 넓히고자 한다. 읽어가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점점 더 이해가 깊어지는 순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림으로써 감성의 세계에도 깊이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지난 호에 이어 ▶

 

일상생활에서 이 대상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함께 어울리게 되는 환경은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전체를 예술가가 배치한 것, 즉 순전한 창안이라고 간주하게 된다.

바구니는 벽돌 위에, 과자들은 채 위에 놓인 접시에, 사과들은 풍성하게 주름 잡힌 탁자보 위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이 같이 끈덕지게 사물들을 쌓아 올리는 것이 예술적 착상의 실마리이다. 이 그림은 구축된 것이다.(그림 1)

▲ (그림 1)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세잔느. 1890-1894년 경. 62×79cm. 시카고 미술연구소
▲ (그림 1)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세잔느. 1890-1894년 경. 62×79cm. 시카고 미술연구소

탁자 역시 두드러지게 띠를 이루고 있는 형태로서 일종의 벽돌쌓기처럼 처리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이토록 많은 요소들이 느낌에 있어서는 비건축적이라는 점이다.

즉 색채의 연속에서 환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서른 개 가량의 사과는 각각 하나의 단일한 회화작품이며 독특한 대상이다. 경사진 비대칭적인 병과 바구니, 접혀서 늘어진 탁자보 등도 그러하다.

너무도 정확하고 미묘하게 결정되어 있으며 조심스럽게 고려된 이 정물에는 일종의 무작위성, 즉 우연적 조합의 측면도 있다. 그것은 질서의 정도가 서로 다른 요소의 집합들(바구니에 담긴 사과들과 탁자보 위에 놓인 사과들, 탁자보의 불규칙한 주름들과 과자들의 규칙적 형태)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질서이다.

이 그림은 하나의 구성으로는 균형이 잡혀 있지만, 부분들에서는 커다란 불균형을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크고 작은 단위들의 평형이 아니라, 안정적인 것과 덜 안정적인 것의 평형이다. 이상하게 기울어진 병은 다른 불안정적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한 문젯거리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그 자체로서는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몇몇 요소들을 전체로서는 균형 잡히게 만드는 문제인 것이다.

과거의 미술에서는 이 문제를 움직이는 인물이나 경사진 지면 혹은 늘어진 커튼과 비스듬한 대상으로써 해결했다. 세잔느에게서 새로운 점은 수직적 대상의 불안정한 축이다.

그러한 왜곡들로 인해 우리는 그림의 최종적 평형이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는 안정성을 모방한 것이라기보다 화가가 성취한 것이라는 점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된다.

여기서는 서로 다른 평면들 속의 사선들(기울어진 병, 경사진 바구니, 과자들의 단축된 선들 그리고 기울어진 이 세 가지 형태들과 상응하며 아래쪽 모서리로 수렴되는 탁자보의 선들)이 하나의 공통적인 불균형의 균형 잡힌 변화들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색채는 화사하고 강건하며 밝다. 큰 대상들에서는 강도가 완화되어 있고, 작은 대상들에서는 더욱 강하다. 그리고 어느 곳에나 세련된 뉘앙스가 있는데, 이것은 시각적으로 활기찬 붓질의 소산이다.

병은 유리의 매끄러움을 갖고 있지만 기타 대상들은 질감이 거의 중성적인데, 물감과 붓질의 성질들에 동화되어 견고하게 보이면서도 분명한 실체들은 아니다.

탁자의 경우 그 구조를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게 ‘추상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그러한 성격이 유지된다. 병 역시 오른쪽 가장자리의 이완된 개방적 처리에서 보듯, 물감과 터치의 이러한 구체성에 내맡겨져 있다.

▲ (그림 2) 페퍼민트 병이 있는 정물. 세잔느. 1893~1895년. 65.7×82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 (그림 2) 페퍼민트 병이 있는 정물. 세잔느. 1893~1895년. 65.7×82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비록 세잔느의 각 정물화들이 그 착상에 있어 제각기 독특하긴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작품의 하나이다.(그림 2)

그는 탁자의 깊이를 억제시켰고 대상들을 수직면에, 마치 벽 자체에 매달린 듯이 처리됐다. 이 벽은 그 색채들과 간결한 선들을 통해 대상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 단축된 공간 속에서 세잔느는 뛰어난 기술로써 대상들의 여러 층을 볼 수 있는 투명한 유리를 그려 보려 했다.

또한 그는 탁자보에다 복잡한 주름을 만들어 그 속의 대상들이 마치 은밀하게 대지 안에 있는 나무나 건물들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수평면을 억제시킴으로써 화면의 형태와 색채에 더욱 분명한 응축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그는 사물들의 물질적 속성, 견고성, 무게, 불투명성과 투명성을 더 즐겨 구사한다.

이 회화가 놀라운 것은 선들의 창안 때문이다. 곡선과 연속선들이 이만큼 풍부한 것은 세잔느의 작품들 중에서도 거의 없다. 보다 단순하고 듬직한 큰 플라스크와 우아한 만곡 부분이 두 군데 있는 페퍼민트 병은 위대한 순수성과 힘의 두 멜로디이다.

그것들의 부분들은 더욱 단순한 과일들의 둥근 형태에서 다시 나타난다. 무엇보다 가장 장엄한 것은 천의 곡선들이다. 완벽하게 신선한 이 형태들은 늘어뜨린 주름선을 그리는 과거의 어떤 관습도 상기시키지 않으며 우리가 아는 어떤 것보다도 자유로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한 형태들과 엄격한 조화를 이룬다.

무거운 푸른 천 위에는 검은 장식문양이 매력적으로 구사되어 있는데 우리는 우연적인 접힘과 주름에 의해 차단된 결과로 빚어진 보다 흥미로운 무늬만을 알 뿐이다.

이것은 선의 자유로운 형태로 벽과 탁자의 선처럼 딱딱하기도 하고 병처럼 곡선적이기도 하며, 어느 곳에서는 꽃이 피고 다른 곳에서는 줄기가 뻗어 있으며 곳곳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는 작은 형태들의 흔적이 있는데, 칸딘스키의 최초의 추상화들을 연상시킨다.

선의 특징적인 연속과 교차는 플라스크로 연장되는 벽의 검붉은 띠이다. 수직선의 병의 측면에서 연속되고 레몬과 닿는 천의 선에서 다시 출현하며 또 이 레몬으로부터 푸른 탁자보 위로 수직적인 줄무늬가 뻗어내려 온다.

벽, 문양이 있는 천, 병, 플라스크는 똑같이 많은 검정 악센트가 있는 녹색, 회색, 보라색, 파란색의 준엄한 영역에 속한다. 강도와 따스함에서 대조적인 반점들(빨간색과 노란색의 과일, 탁자, 병의 코르크 마개와 상표)은 수직적, 수평적 집합을 이루고 있는데 이 집합은 벽의 엄격한 구축성을 유지한다. 세잔느가 플라스크를 대담하게 비대칭으로 묘사했다는 것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축소되고 평면화된 보다 밝은 왼쪽 부분의 과장된 표현은 이웃대상들의 수직적 형태에 부합하며, 거기에는 유리를 통해 보이는 사과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 아래서 사과와 배를 감싸고 있는 흰 천의 가장자리도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세잔느가 그의 구성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자연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여준 생생한 예이다.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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